슬라이스/꿈 한움큼

090320. 눈을감고읽으시오

디아나§ 2009. 3. 21. 03:16

  잠에서 갓 깨었을때, 그리고 다시 잠으로 끌려들어 갈것 같은 때에 기억나는 꿈이 한움큼 있다면 반드시 적어두는 것이 좋다. 아침에 잠을 완전히 종결짓고 일어나면 어렴풋한 향기의 끝자락만 남기고 사라져버릴 위험이 크니까. 그리고 그 때 끄적인다면 의식보다 무의식의 세계에 더 가까운 언어로 말할수 있다. 나중에 보면 아리송할 정도로.

  어제 새벽녘이 그랬었다. 잠깐 깼었는데, 몽롱한 가운데 펜을 찾다가 휴대폰 임시저장함에 기록을 남겨두고는다시 도로롱 잠이 들었다. 한번 볼까.


어두운 톤을 나눠 물살이 갈라졌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눈을감고읽으시오 단테의신곡이었나 할수있을 것만 같았다
엔도에갓가시화



  굳이 무언가 끼워맞춰보자면 들춰본 적도 없는 단테의 신곡이 나온건 최근에 알게된 학교 친구가 잠깐 언급을 했기 때문일테고 마지막 말은 오타인데 쓰려고 했던 정확한 말은 알 수 없지만 텍스트의 가시화가 이루어졌다는 표현이었던 것 같다. 꿈에서 깨자마자, 혹은 후에 이 기록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니체를 읽었을 때의 기억이다. 그의 글들은 아포리즘적이고 여러 겹으로 읽히며 문장 구조는 단순하나 깊이가 얕지 않아서 오독의 위험도 높고 (나치의 경우) 처음부터 쉽게 와닿지 않는 때가 많다. 하지만 휴학 시절 꾸준히 세미나에서 가닥을 잡고 계속 그의 언어에 노출이 되자 머리로는 따라가지 못하나 몸으로 니체를 이해하는 듯한 느낌이 든 적이 있다. 그의 말들은 강하고 매력적이었으며 위험한 초록색이었고 춤을 추듯 노래 하듯 흐르는 언어의 가락은 나의 마음을 넘어 몸까지 바꾸었다. 그렇기에 꿈 속에서 누군가 (절대자들같은 느낌이었다) 내게 책을 던져주고 눈으로 보지말고 읽으라고 하자 눈이 아닌 온몸, 내 몸의 감각과 근육으로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거다. 
 
  공감각적인 꿈을 꾸었을 때, 나는 꿈 다음으로 기분이 가장 좋다.